[책마을] 북유럽선 어떻게 공동이익과 개인 자유가 공존할까

입력 2019-12-12 17:30   수정 2019-12-13 00:3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노르웨이의 의료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0%였다. 1인당 의료비는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고, 한국의 2.6배다. 의료 지출 가운데 85%는 공공 지출이다. 개인 부담은 극히 적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은 연간 22만원까지만 환자 부담이고 초과분은 무료다. 건강보험이 보장해 주지 못하는 초과분을 환자가 부담하는 우리와는 정반대다.

스웨덴에서는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포함한 교육예산의 공공재정 비중이 97%다. 그중 대학에 대한 공공재정 비중은 89%로, 사부담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민간이 설립한 ‘자유학교’ ‘차터스쿨’ 등의 사립학교도 대부분 공공자금으로 운영된다.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보편적 복지의 천국이다. 내국인은 물론 이민자, 외국인에게도 차별 없이 복지 혜택이 주어진다. 언뜻 보면 유토피아나 다름없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소득세율이 덴마크 36.2%, 노르웨이 27.9%, 스웨덴 24.9%로 한국(14.1%)보다 훨씬 높다. 법인세율은 덴마크 22.0%, 노르웨이 24.0%, 스웨덴 22.0%로 한국(24.2%)과 비슷하거나 낮다. 그런데도 개인들 불만은 거의 없다.

북유럽 강소국인 스칸디나비아 3국(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은 어떻게 이런 사회를 만들었을까. <북유럽의 공공가치-의료정책과 교육정책의 현장에서>는 10여 년 동안 한국과 북유럽을 오가며 ‘북유럽 모형’을 연구해온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의 역작이다. 단지 제도와 정책만 본 것이 아니라 직접 생활하면서 50여 명의 심층 인터뷰와 참여 관찰, 단체 면담과 소주제별 면담 등을 통해 그곳 사람들의 실제 생활과 생각, 가치관 및 행태를 분석한 결과다.

저자는 공정·합리·관용·복지국가 등으로 표현되는 피상적 이해를 넘어 ‘공공가치’라는 틀로 북유럽 3국을 분석한다. 현재 보이는 북유럽의 모습은 단지 법과 정책이 뛰어나거나 정치인과 기업인 등 특정 집단의 도덕성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형성·유지해온 공공가치로 지탱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공공가치를 구성하는 두 축은 개인가치와 사회가치다. 개인가치는 자율성, 독립, 자아표현, 자유와 자유주의,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가치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사회가치는 연대성, 공동체의식, 참여, 협력, 평등, 보편주의, 관용, 신뢰 등을 주요 속성으로 한다. 흔히 개인가치와 사회가치는 대립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특히 국내에서 공공가치론은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 전반의 갈등과 문제의 원인을 승자독식의 시장경제 구조, 포식자적 경쟁가치, 기계적 효율만능주의, 개인과 소속집단 중심의 이기적·배타적 개인가치 등에서 찾는다. 북유럽 3국은 이와 달리 개인가치와 사회가치가 대립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고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면서 노르웨이는 개인주의와 동조주의가 밀착된 가치체계를 지녔고, 스웨덴은 국가주의적 개인주의, 덴마크는 집단주의 성향의 개인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나라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주의가 사회연대성과 공존하는 게 특징이다. 사회의 공동이익을 우선시하면서도 재산권의 자유와 보장지표, 경제자유도가 한국보다 높은 것은 이런 까닭이다. 저자는 “정책과 제도에 반영되는 북유럽 공공가치의 특징은 자본주의와 결합한 사회가치, 복지체제와 결합한 개인가치”라고 설명한다.

석유로 부자가 됐지만 석유산업 수익금의 대부분은 미래세대를 위해 쌓아두고 현재 세대는 높은 세율을 부담하며 살아가는 노르웨이, 정부와 군수산업이 결탁하고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인데도 사회적 책임에 철저하고 부패 없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예외를 보여준 스웨덴, 개인의 결정과 생활에 국가가 관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데도 위기 때면 여야가 합의하고 사회구성원이 단결하는 협동주의를 보여온 덴마크. 저자는 이들 나라의 사례를 토대로 ‘실용적 이중주의’를 제안한다. 개인가치와 사회가치 중 한쪽에만 기울지 말고 둘을 탄력적으로 결합해 운영함으로써 실용적이고 다변화된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수준 높은 복지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복지 서비스 이용을 최소화한다. 재정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 않고 평소 건광관리에 적극적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선 주류 판매를 정부가 독점·관리하고 음주 규제와 절주 문화가 정착돼 있다. 정책과 제도라는 껍데기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만든 배경과 맥락, 문화까지 입체적으로 함께 봐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800여 쪽의 방대한 이 책은 북유럽의 일반론과 각국의 공공가치 발달 과정, 의료 및 교육정책과 제도,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 등을 담아낸 연구서다. 하지만 내용과 논리가 복잡하지 않은 데다 쉽고 깔끔한 문장, 다양하고 생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준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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